페이지 정보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11-15본문
지난주와 지지난주 경제계의 가장 뜨거운 뉴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지침 개정안 내용에 대한 경제단체들의 거센 반발이었다.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사익편취행위)'가 중대하여 해당 행위를 한 사업자를 고발하는 경우 특수관계인(회장 및 친인척)도 원칙적으로 고발하도록 하는 내용이 개정안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재계가 강하게 비판하면서 거세게 반발하자, 언론도 기사와 논평을 쏟아냈다.
그래서일까. 공정위가 재계와의 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보완하겠다고 한발 물러난 모양새다. 그동안 시민단체와 언론이 사익편취행위로 법인을 고발하면서 이익을 본 회장과 친인척을 고발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왔다. 그런 가운데 올해 3월 대법원이 태광그룹의 사익편취행위와 관련된 판결에서 회장의 '관여'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해석을 내놓았다. 대법원 판례를 반영하면서 특수관계인에 대한 과소고발 문제를 해소하고자 이번 개정안을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형벌과 관련된 하위 규정은 상위 법령에 저촉되어서는 안 된다. 공정거래법 제129조에 따르면 법 위반의 정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중대하여 경쟁질서를 현저히 해친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검찰총장에게 고발해야 한다.
같은 법 제124조에는 특수관계인이 사익편취행위를 지시하거나 관여한 경우에만 특수관계인에게 형벌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특수관계인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중대·명백하고 경쟁질서를 현저히 해치는 사익편취행위를 특수관계인이 지시하거나 그에 관여해야 한다. 두 조건이 동시에 충족될 경우에만 특수관계인을 고발할 수 있는 것이다. 재계의 반발 이유는 고발지침 개정안의 내용이 법 위반의 중대성을 요건으로 하는 법률 규정을 위반했고, 중대성 판단을 위해서는 특수관계인의 지시·관여 여부와 정도를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형벌은 자기책임이 원칙이다. 자기의 위법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의 또는 미필적 고의가 있어야 한다.
고의는 자신의 행위가 법에 위반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며, 미필적 고의는 위법인 줄은 몰랐으나 위법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사후에 용인하는 것을 말한다. 사익편취행위를 이유로 특수관계인을 벌하려면 특수관계인이 당해 거래가 위법임을 알면서 지시 또는 관여하거나 처음에는 위법 여부를 몰랐지만 사후에 위법 가능성을 인식하고 이를 용인해야 한다. 개정안의 내용과 같이 사익편취행위로 법인을 고발할 경우 직·간접 증거를 통한 특수관계인의 지시·관여 여부와 정도를 따지지 않고 원칙적으로 고발하는 것은 형벌의 자기책임원칙에 어긋난다. 형벌 부과와 관련해 대법원은 시종일관 엄격한 입증을 요구하고 있다.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의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사익편취행위로 특수관계인을 고발하려면 최소한 특수관계인이 사익편취행위를 지시하거나 이에 관여한 직·간접 증거는 필요하다. 고발권 행사는 1차적으로 공정위의 몫이다. 임의조사로는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해 고발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장반칙행위에 대한 고발권 행사를 공정위에 준 이유를 곰곰이 되새겨 봐야 한다. 경제활동에 대한 형벌 개입은 시장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으므로 보충적으로 적용돼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있지 않은가.
김형배 법무법인 더킴 공정거래그룹 고문
출처 : 한국일보